
마음이 복잡할 때 여러분은 어디로 향하시나요? 저는 한 달에 2~3번씩 부산 기장에 있는 해동용궁사를 찾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3대 관음성지 중 하나로, 바다를 품고 있는 독특한 사찰입니다.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대사가 창건한 이래 600년 넘게 중생들의 염원을 받아온 기도도량이죠. 저 역시 큰아이의 시험, 남편의 수술, 작은아이의 군 자대배치를 앞두고 이곳을 찾아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특히 작은아이가 강원도가 아닌 남쪽 함안으로 배치받았을 때는 정말 제 기도가 부처님께 닿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바다를 품은 사찰, 108계단이 시작되는 곳
해동용궁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십이지상이 반겨줍니다. 각자의 띠를 상징하는 12개의 석상 앞에서 소원을 빌고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도 용띠라서 그런지 용띠 석상 앞에 설 때마다 묘한 인연을 느낍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신의 띠 앞에서 브이 사인을 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십이지상을 지나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대나무 숲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이곳은 신우대(神佑臺)라 불리는데, 신우대란 신의 도움을 받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격적인 용궁사 관람은 108계단에서 시작됩니다. 108계단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108가지 번뇌를 상징하는 계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번뇌를 내려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계단이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걸으며 마음을 가다듬기에 좋습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멀리 금빛 지장보살상이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푸른 기장 앞바다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소나무 길을 따라 지장보살상 가까이 다가가면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금빛 보살상이 어우러진 장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분들이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지는데, 저도 한 번 시도해봤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해수관음보살상
용궁사의 핵심은 단연 해수관음보살상입니다. 해수관음이란 바다를 관장하며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을 뜻합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용궁사의 해수관음보살상은 낙산사,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성지로 꼽히는데요.
저는 이 세 곳을 모두 다녀본 경험이 있습니다.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는 동해바다를 아우르는 웅장함이, 남해 보리암은 잔잔한 남해를 품은 고요함이 특징이라면, 해동용궁사는 기장 앞바다의 역동적인 파도와 어우러진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대웅전 옆에는 관욕불(灌浴佛)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관욕불이란 작은 부처님 상에 물을 뿌려 목욕시키는 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탐진치(貪瞋癡) 삼독을 씻어내고 청정한 지혜를 얻기 위한 의식입니다. 여기서 탐진치란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불교의 세 가지 근본 번뇌를 의미합니다. 저도 직접 아기 부처님께 물을 뿌려드렸는데, 차가운 물이었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대웅전과 광명전에서는 평일에도 많은 불자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대웅전은 원래의 나무 기둥을 전혀 다듬지 않고 그대로 세워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대웅전보다 바다를 마주한 해수관음상 앞에서 더 오래 기도를 드립니다.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은 그곳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거든요.
새해 첫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
해동용궁사 주지스님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차를 나누며 "Who are you(넌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신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을 아는가'라는 심오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죠. 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라고 가르칩니다.
저 역시 용궁사를 찾을 때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과연 저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이곳을 찾았는가.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정돈되고 일상의 복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용궁사는 새해 첫날 일출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올해 1월 1일 저도 일출을 보러 용궁사를 찾았는데, 많은 인파 속에서도 기장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주지스님 말씀처럼 일출 시간에 지장보살상 앞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이었습니다(출처: 부산광역시 문화관광).
용궁사를 찾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십이지상에서 자신의 띠 앞에서 소원 빌기
- 108계단을 천천히 걸으며 번뇌 내려놓기
- 지장보살상 앞에서 일출 감상하기
- 해수관음보살상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기
- 관욕불에서 아기 부처님께 물 뿌려드리기
- 대웅전 뒤편 포대화상의 미소 보기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사찰 입구에 상인들이 쥐포와 오징어를 구워 파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음식 냄새가 진동하다 보니 이곳이 사찰인지 관광지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사찰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려면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동용궁사는 제게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바다 위에 지어진 독특한 입지, 600년 역사의 깊이, 그리고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영험함.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저를 한 달에 두세 번씩 이곳으로 이끕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답답할 때, 여러분도 해동용궁사를 찾아 푸른 바다 앞에서 잠시 멈춰 서보시길 권합니다. 파도 소리와 함께 나 자신에게 "Who are you"라고 물어보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