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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서운암 (항아리, 야생화축제, 도자대장경)

by hks1000 2026. 4. 8.

통도사 서운암 항아리사진

 

절에 갔다가 된장 생각이 간절히 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랬습니다. 통도사 서운암에서 사 온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 한 그릇이 시중에서 파는 그 어떤 된장과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고소하고 짜지 않으면서 깊은 맛. 스님들의 정성이 그대로 담긴 맛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통도사의 19개 암자 중 하나인 서운암은 항아리, 야생화, 그리고 16만 도자대장경까지, 일반 암자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을 품고 있습니다.

항아리 5천 개와 아이들의 기억 — 서운암 된장과 야생화축제

서운암 마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 솔직히 말하면 법당보다 항아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햇볕을 받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며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니, 그 수가 워낙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하나씩 세어보기 시작했는데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세다가 그만두게 만드는 절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범상치 않은 곳이었습니다.

서운암의 항아리는 총 5천 개에 이릅니다. 1980년대 들어 생활방식이 바뀌면서 항아리는 쓸모를 잃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는데, 성파 스님이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 숫자까지 늘어났습니다. 각 항아리 안에는 서운암표 된장과 고추장이 담겨 오랜 시간 숙성됩니다. 서운암 된장의 특징은 장독(장을 담는 전통 옹기)에 옷을 삶은 물을 더해 담근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옷을 삶은 물이란 잡균과 곰팡이 번식을 억제하는 천연 항균 성분을 지닌 액체로, 된장 고유의 풍미를 해치는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통 장류 제조 방식 중에서도 드문 방법입니다. 제 경험상, 그렇게 만든 된장의 깊이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축제 방문 시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서운암 야생화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성파 스님이 1980년대부터 암자 주변 산자락에 야생화 씨앗을 뿌리고 가꾸기 시작했고, 지금은 약 20만 평 부지에 100여 종 수만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군락지가 되었습니다. 군락지(群落地)란 같은 종류의 식물이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자라는 공간을 뜻하며, 인위적인 화단과 달리 자연 경사면을 따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걷는 내내 정원이 아닌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 납니다.

그날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은 금낭화였습니다. 책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금낭화를 아이들도 신기하게 바라봤고, 저도 화려하진 않지만 그 단아한 생김새에 한참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야생화를 구경하고, 아이들과 산비탈에서 쑥도 캐고, 서운암에서 캐 온 쑥으로 집에서 쑥떡을 해 먹었는데 쑥떡을 잘 안 먹던 작은아이가 "내가 캔 쑥이잖아" 하면서 잘 먹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서운암 야생화축제를 계획 중이신 분들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드리는 방문 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축제 기간 방문객이 매우 많으므로 평일 오전 방문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 통도사 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하듯 걸어 올라오면 주변 풍경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 야산 경사면을 따라 꽃이 피어 있으므로 반드시 편안한 운동화를 착용하세요.
  • 아이와 함께 간다면 쑥 캐기 체험을 자연스럽게 곁들여 보시길 권합니다.

삼천불전과 16만 도자대장경 — 예술인가, 집착인가

서운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삼천불전입니다. 삼천불전(三千佛殿)이란 3천 분의 부처님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며, 서운암의 삼천 불상은 목주를 틀로 삼아 도자기 기법으로 한 점 한 점 구워낸 것이 특징입니다. 가마 안에서 온도와 시간을 각기 달리 조절해 색의 농도를 다르게 입히고, 부처님의 눈과 눈썹을 직접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3천 분의 부처님 얼굴이 모두 다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법당 안으로 들어서니 자꾸 옆 부처님과 비교하게 되더군요. 제 경험상 삼천불전 안에서 "이 부처님이랑 저 부처님이 어떻게 다를까" 찾아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습니다.

서운암의 또 다른 중심은 장경각(藏經閣)입니다. 장경각이란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을 뜻하며, 서운암의 장경각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장경판전(藏經板殿)의 구조를 참고해 지었습니다. 자연 대류 현상을 이용한 통풍 설계,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키는 배치 방식 등이 해인사와 흡사합니다. 건물 기둥과 내벽에는 옻칠을 했는데, 옻칠이란 옻나무 수액에서 추출한 천연 도료를 표면에 발라 굳히는 전통 마감 기법으로 습기 차단과 방충 효과가 뛰어납니다. 16만 도자대장경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이유가 바로 이 옻칠 공법입니다.

팔만대장경과 서운암 16만 도자대장경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목판(나무)을 재료로, 몽골 침입을 불력으로 막겠다는 간절한 발원으로 제작되었으며 인쇄용 판본의 역할을 합니다. 반면 서운암 도자대장경은 점토를 구워 만든 도판(陶板)을 재료로, 팔만대장경의 정신을 현대 예술로 승화하고 영구 보존하겠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경판 제작에만 10년, 장경각 완성까지 10년, 총 20년의 세월과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었습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팔만대장경 보존 방식의 과학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솔직히 말씀드리면, 서운암을 둘러보면서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불교가 지향하는 무소유(無所有)와 비움의 가치에 비해, 서운암은 "최초", "최대"라는 수식어에 유독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습니다. 팔만대장경이 합천 해인사에 이미 존재하는데 도자대장경을 굳이 만들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20년의 집념이 하나의 예술적 성취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불교 문화재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의미 있는 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통도사의 암자 문화에 대한 더 넓은 이해를 원하신다면 통도사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출처: 통도사).

다음에는 아이들 없이 혼자 서운암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때는 삼천불전 앞에 오래 앉아, 각기 다른 부처님의 얼굴을 하나씩 천천히 바라보고 싶습니다. 서운암은 한 번 가면 끝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게 다녀온 뒤 느낀 솔직한 생각입니다. 야생화가 피는 봄에 한 번, 조용한 가을에 한 번, 방문 시기를 달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gX03UQwC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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