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마다 어디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집에만 있게 되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저도 부산에 살면서 멀리 가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자니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바로 양산입니다. 부산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 거리에 이렇게 좋은 곳들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양산에 있는 찜질방 때문에 자주 가는 편인데, 갈 때마다 들르는 단골 코스가 몇 군데 생겼습니다.
79년 만에 공개된 비밀의 숲, 법기수원지
법기수원지는 1932년 일제강점기에 처음 만들어진 상수원 보호구역입니다. 여기서 상수원 보호구역이란 우리가 마시는 수돗물의 원수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곳을 말합니다. 무려 79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이곳이 2011년에 일부 구간만 개방되면서 지금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천혜의 원시림 같은 풍경이 부산 근교에 있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양쪽으로 늘어선 히말라야시다 나무가 터널을 만들어주는데, 이 나무들이 거의 100년 가까이 된 고목들입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천천히 걸으면서 피톤치드를 마시고 나면 머릿속이 정말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반송입니다. 반송이란 소나무 중에서도 줄기가 꼬이거나 휘어진 형태의 소나무를 말하는데, 법기수원지에는 수령 130년이 넘는 반송 7그루가 자생하고 있습니다. 이 소나무들은 저수지가 만들어질 때 이미 50년생이었던 나무들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멋진 소나무는 정말 처음 봤습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상수원 보호구역이자 생태보존구역이기 때문에 규칙이 매우 엄격합니다.
- 음식물 반입 금지
- 반려동물 출입 불가
- 돗자리 및 자전거 금지
- 금연 및 식물 채취 금지
관람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하절기 (4월~10월): 08:00 ~ 18:00 / 동절기 (11월~3월): 08:00 ~ 17:00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무료로 개방한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가을 정취를 한눈에, 황산공원 코스모스 단지
법기수원지에서 차로 20분 정도 이동하면 황산공원이 나옵니다. 이곳은 낙동강변에 조성된 공원으로, 가을이면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장관을 이룹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9월 말이었는데, 보라색 버들파평초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버들파평초는 허브의 일종으로 보라색 꽃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황산공원을 양산을 대표하는 가을 나들이 명소입니다.
공원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입구에서부터 전망대까지 걸어가는 길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꽃밭이 장관입니다. 전망대는 5층 높이 정도 되는데, 올라가면 황산 코스모스밭과 뒤로 펼쳐진 오봉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 뷰만 봐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산공원에는 일반적인 분홍빛 코스모스뿐만 아니라, 오렌지빛이 매력적인 황화 코스모스가 함께 식재되어 더욱 다채로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10월 중순에서 11월 초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가을의 절정을 이룹니다. 이 시기에는 국화 축제, 댑싸리(코치아), 백일홍 등 다양한 가을꽃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는 에어컨도 나오고 휴게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잠깐 쉬었다 가기 좋습니다. 저는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안쪽 꽃단지까지 걸어가 봤는데, 천일홍을 비롯한 여러 가지 꽃들이 심어져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이곳은 물금역에서 원동 순매원 가는 길 중간에 있어서 찾아가기도 쉽습니다.
10월 중순이 되면 코스모스가 절정을 이루고 단풍까지 들어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합니다.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기 정말 좋은 곳입니다.
최치원 선생의 흔적이 남은 임경대
황산공원을 나와서 조금만 더 가면 임경대가 나옵니다. 임경대는 신라시대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시를 읊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선생은 이곳의 풍광이 마치 거울 속의 그림 같다고 하여 '임경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모양새가 최치원 선생의 자(字)인 '고운(孤雲)'처럼 구름 같기도 하고, 거울처럼 맑게 빛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운대(孤雲臺): 최치원 선생의 호를 따서 '고운대'라고도 불리며, 황산강(낙동강의 옛 이름) 서쪽 절벽에 있다 하여 '황산강 임경대'라고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최치원 선생은 해운대라는 지명을 직접 지으신 분으로도 유명한데, 해운대에 가면 선생이 직접 쓴 '해운대' 현판을 볼 수 있습니다.
임경대로 가는 길은 소나무 숲길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저녁 무렵이어서 햇살이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모습이 정말 운치 있었습니다. 산책로는 휠체어도 올 수 있게 경사가 완만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임경대를 지나는 황산베리길 산책로는 데크가 잘 정비되어 있어 남녀노소 걷기 편하며, 자전거 라이더들에게도 사랑받는 코스입니다.
정자에 올라서면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강 풍경이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고 해서 유명한데, 실제로 보니 정말 비슷했습니다. 임경대는 부산과 양산을 통틀어 일몰명소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해질 무렵이었는데 노을은 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다음에는 일부러 해 질 녘에 와서 노을 지는 풍경을 꼭 담아보고 싶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임경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서 논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임경대로 추정되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이곳은 그중 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 '임경대'라는 현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천년고찰과 메밀꽃이 어우러진 통도사
양산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역시 통도사입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입니다. 여기서 불보사찰이란 부처님과 관련된 유물을 모신 사찰을 의미하며, 합천 해인사의 법보사찰(經典), 양산 통도사의 불보사찰(佛), 순천 송광사의 승보사찰(僧)을 합쳐 삼보사찰이라고 부릅니다(출처: 문화재청).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통도사 서운암에서 쑥을 캐며 자연체험학습을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아이들 입시 때는 자장암에 있는 개구리 보살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자장암 툇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산 풍경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 자장암의 8할은 그 뷰가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통도사는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봄에는 홍매화가 만개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시원함을 주고,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을 이룹니다. 제가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통도사 극락암 가는 길 양쪽으로 메밀꽃밭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9월 말에서 10월 초가 메밀꽃이 가장 화려할 때라고 합니다.
극락암으로 가는 길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불교방송에서 촬영하는 장소도 있습니다. 메밀꽃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서 영축산을 바라보는 풍경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번 봄에는 꼭 홍매화 시즌에 다시 방문할 계획입니다.
통도사 입장 시간은 오후 5시 30분까지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통도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양산은 부산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볼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법기수원지에서 원시림 같은 숲을 경험하고, 황산공원에서 가을 꽃을 만끽하고, 임경대에서 낙동강을 조망하고, 통도사에서 천년의 역사를 느끼는 코스를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있습니다. 법기수원지를 방문한 후에는 1971년부터 운영된 옛 목장을 개조한 성림목장 카페에 들러 우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추천합니다. 다음 주말에는 가까운 양산으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