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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승선교, 일주문, 선암매)

by hks1000 2026. 4. 9.

순천 선암사 승선교 아치형 다리사진

매화꽃이 한창이던 봄날, 저는 전라남도 순천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찰이라고 하면 고즈넉하고 조용한 풍경을 떠올렸는데, 선암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붉게 타오르는 매화꽃이 눈앞에 가득 펼쳐지면서 제 발걸음이 그 자리에 딱 멈춰버렸습니다. 이 글은 직접 발로 걸으며 느낀 선암사의 이야기입니다.

승선교, 왜 전국 사진 명소가 됐을까

주차장에서 선암사까지는 약 1km 정도의 완만한 흙길이 이어집니다. 저는 되도록이면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울창한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 사이를 걷다 보면 피톤치드(phytoncide)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납니다. 피톤치드란 나무가 해충이나 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출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주일치 피로가 그 1km 구간에서 다 풀리는 기분이랄까요.

걷다 보면 계곡을 건너는 지점에 홍예교(虹蜺橋)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홍예교란 아치형 구조로 쌓아 올린 전통 돌다리를 말하는데, 그 중에서도 승선교(昇仙橋)는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홍예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다리입니다. 숙종 39년인 1713년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구도를 잡아봤는데, 다리 아래의 아치 너머로 강선루(降仙樓)가 딱 맞아 들어오는 순간 왜 이곳이 전국적인 포토스팟으로 유명한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자연과 인공 건축물이 이토록 완벽하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제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관광객들, 그리고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남기던 MZ세대들 모두 같은 감동을 받은 것이겠지요. 저도 결국 그 아치 아래에서 한참을 머물다 사진을 남겼습니다. 여행에서 남는 건 결국 사진뿐이더라고요.

일주문이 말해주는 것 —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은 건축

승선교를 지나 경내로 오르는 계단 위에서 선암사 일주문(一柱門)과 마주쳤습니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어, 이게 뭐가 다르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둥 양옆으로 짧은 담장이 붙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보고 나서야 다른 사찰 일주문과 다르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일주문이란 사찰의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서 있어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암사의 일주문은 기둥 옆에 횟가루로 마감한 짧은 흰 담장이 덧붙여져 있어 조선 중기 건축의 지역적 특색을 잘 보여줍니다. 2022년에 보물로 승격된 이 건축물이 특히 경이로운 이유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전란 속에서도 소실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사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스님들을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일주문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계단 위에서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보물 제1311호인 대웅전(大雄殿)이 정면에 서 있습니다. 조선 후기 화려한 다포계(多包系) 양식을 잘 보여주는 이 건물은 설명판을 읽고 나서 다시 올려다보니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다포계 양식이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공포(栱包, 처마를 받치는 구조물)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건물에 화려함과 웅장함을 더하는 조선 후기 대표적 건축 기법입니다. 대웅전 앞을 지키는 두 기의 삼층석탑은 화려한 대웅전과 대비되듯 단아하고 절제된 미를 보여주고 있어, 그 균형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암매와 야생차, 계절마다 다른 선암사의 얼굴

선암사를 봄에 방문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선암매(仙巖梅)입니다. 선암사 경내에서 자라는 수령 600년 이상의 매화나무들로, 우리나라 4대 매화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활짝 핀 붉은 매화꽃이 고찰의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광경은 다른 어떤 봄 여행지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선암사에 대해 "봄 매화 사찰"이라고만 알고 가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가을 단풍도 반드시 직접 보고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선암사와 송광사 일대는 국가유산 명승(名勝) 제6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출처: 국가유산청). 명승이란 경관이 뛰어난 자연 또는 자연과 인문이 어우러진 공간을 국가가 지정하여 보호하는 제도입니다. 그만큼 사계절 내내 다른 얼굴을 가진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직 여름과 겨울의 선암사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선암사를 다녀왔다"고 말하려면 네 번은 와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암사에 오면 꼭 챙겨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절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야생차 체험관입니다. 조계산 자락은 야생 차밭으로 유명한 곳으로, 제가 직접 다도(茶道) 체험을 해봤는데 차 한 모금이 입안에서 오래도록 맴도는 깊고 맑은 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님들이 직접 재배하신 차라 그런지 왠지 더 효험이 있을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도 했습니다. 선암사에 들른다면 차 한 잔의 여유도 꼭 챙겨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선암사에서 놓치면 아쉬운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승선교 아치 아래에서 강선루가 보이도록 구도를 잡아 사진 촬영
  • 선암매 개화 시기(보통 3월 초~중순)에 맞춰 봄 방문
  • 야생차 체험관에서 조계산 야생차 다도 체험
  • 문화재 자료 제214호로 지정된 선암사 측간(해우소) 관람 — 정자 형식의 목조 건축으로 통기성과 구조가 과학적이라 건축사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은 곳
  • 단풍 철(10월 말~11월 초) 가을 방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선암사는 백제 성왕 5년(527년) 아도화상이 '해천사(海川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고, 이후 통일신라의 도선국사가 지금의 터에 중창하며 선암사(仙巖寺)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전해집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500년 가까운 세월이 이 산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셈입니다.

선암사를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느낀 것은, 이곳이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선조들의 미학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대웅전에서 조용히 절을 하고 나오니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이 무거울 때 혼자 다녀오기에도 좋고, 다음에는 남편과 함께 가을 단풍 속에서 다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선암사, 아직 가보지 않으셨다면 올 봄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rY5jrmaK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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