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마다 "올해는 꼭 단풍 보러 가야지" 하면서 매번 타이밍을 놓쳐본 분들 많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작년에는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진주에서 강원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다녀와 보니, 설악산에 대해 알려진 것들이 실제와 꽤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케이블카 없이는 절반도 못 본다 — 설악 케이블카와 권금성
설악산에는 다양한 등산 코스가 있지만, 일반 여행객이 단풍을 가장 효율적으로 즐기는 방법은 설악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르는 것입니다. 케이블카는 설악산 소공원 탑승장에서 출발해 권금성 탑승장까지 약 1.2km 구간을 운행하며, 편도 약 5분이 소요됩니다.
일반적으로 단풍 시즌 주말에는
15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단풍 절정기라 평일도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주말보다는 훨씬 수월했습니다. 참고로 케이블카는 사전 예약을 받지 않고 당일 현장 구매만 가능하며, 강풍 시에는 운행이 중단됩니다. 전날 홈페이지에서 운행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케이블카에서 자리가 중요하다는 걸 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탑승 시 가장자리 쪽에 서야 이동하는 내내 단풍 뷰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서게 되면 양옆이 막혀 경치를 놓치기 쉽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겪어본 이야기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권금성 탑승장에 내리면 정상인 봉화대(烽火臺)까지 약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게 됩니다. 봉화대란 조선시대 군사 통신 수단으로 사용된 신호용 불을 피우던 시설로, 권금성은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 권씨와 김씨 두 장수가 하룻밤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현재는 성벽이 허물어지고 터만 남아있지만, 봉화대의 위용은 여전합니다. 길이 좁은 구간이 있어 오르내리는 사람들끼리 서로 양보가 필요하고, 비가 온 뒤에는 바닥이 미끄러울 수 있으니 반드시 운동화를 착용하셔야 합니다.
봉화대에서 내려다본 설악산 뷰는 파노라마(panorama), 즉 360도 전방위로 펼쳐지는 광활한 경관 그 자체였습니다. 알록달록하게 물든 봉우리들 너머로 병풍처럼 솟은 울산바위, 그리고 산맥 너머로 펼쳐진 속초 시내와 영랑호, 속초항까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케이블카만 타고 그냥 내려갈 뻔했는데, 봉화대까지 올라간 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비선대 천불동계곡 — 단풍이 가장 진하게 보이는 이유
권금성을 내려온 뒤에는 비선대 코스를 걸었습니다.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는 편도 약 3.0km, 왕복으로 약 2시간이 소요됩니다. 비선대와 천불동계곡(千佛洞溪谷) 일원은 지리산의 칠선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히는 곳으로, 지형적 아름다움과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명승(名勝)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명승이란 경관이 뛰어나거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경승지를 국가가 공식 지정한 문화재를 의미합니다(출처: 문화재청).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길이 험할 것이라 지레 걱정했는데, 탐방로가 완만하고 잘 정비되어 있어 70대 친정부모님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완주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고, 함께 갔던 엄마가 이번 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설악산이라고 하셨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걷다 보면 와선대(臥仙臺)를 지나게 됩니다. 와선대란 신선 '마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너럭바위에 누워 경치를 감상했다는 전설이 깃든 장소로, 비선대에서 약 300m 아래에 있습니다. 비선대에 도착하면 하늘을 찌르는 기암절벽이 압도적인데, 미륵봉, 형제봉, 선녀봉 세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상 느낀 건데, 단풍은 물가 근처에서 더 진하고 선명하게 보입니다. 천불동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어서인지 계곡 주변 단풍빛이 유독 깊고 풍성했습니다. 계곡 위를 올려다보면 암벽 등반(rock climbing)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는데, 수직 암벽을 오르는 광경이 단풍 배경과 어우러져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천불동계곡에서 찍은 단풍 사진은 지금도 제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대표 자연 보호구역입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설악산 국립공원은 연간 방문객이 3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찾는 산악형 국립공원 중 하나입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그만큼 탐방로와 안전시설이 잘 관리되어 있어 일반 여행객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습니다.
신흥사부터 온천까지 — 설악산 여행을 완성하는 마지막 코스
비선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신흥사(神興寺)에 들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7년인 653년에 자장(慈藏) 율사가 창건한 향성사(香城寺)를 모태로 하는 천년 고찰입니다. 소공원에서 비선대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본격적인 탐방 전이나 후에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높이 14.6m의 신흥사 통일대불(統一大佛)이 나타납니다. 통일대불이란 민족 통일을 기원하며 조성한 청동 불상으로, 그 규모와 존재감이 상당합니다. 사천왕문과 보제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보물 제1981호로 지정된 극락보전(極樂寶殿)이 눈에 들어옵니다. 극락보전이란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불전으로, 이곳에는 보물 제1721호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가을에는 기와지붕 위로 떨어진 단풍잎들이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깊게 만들어줍니다. 제 경험상 신흥사는 단순히 문화재를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설악산의 자연과 가장 잘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웅장한 산세 아래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설악산 구경을 마친 뒤에는 속초 인근의 온천을 적극 권합니다. 하루 종일 걷고 난 뒤 온천에 몸을 담그면 근육 피로가 풀리는 것이 확실히 느껴집니다. 피부도 매끈해지고 기분도 달라집니다. 설악산—비선대—신흥사—온천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저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악산 단풍 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설악 케이블카 탑승 → 권금성 봉화대 정상 (파노라마 뷰, 울산바위, 동해 조망)
- 비선대 탐방로 왕복 3.0km → 천불동계곡 단풍 감상 (약 2시간 소요)
- 신흥사 경내 관람 → 통일대불,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 속초 온천으로 하루 마무리
설악산은 봄이나 여름에도 아름답지만, 단풍이 절정에 이른 가을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계절은 없는 것 같습니다. 케이블카, 권금성, 비선대, 신흥사를 하루에 모두 돌아보는 것이 체력적으로 벅차 보일 수 있지만, 코스 자체가 완만하게 설계되어 있어 생각보다 충분히 소화 가능합니다. 올가을 단풍 여행을 고민 중이라면, 설악산은 그 어떤 선택지보다 후회 없는 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