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가을, 태종대를 다녀온 후 시간이 남아 흰여울마을에 들렀습니다. 북항대교를 건너며 차창 밖으로 보이던 그 하얀 마을을 직접 걸어보고 싶었거든요. 막상 도착하니 주차장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고, 비좁은 골목길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하지만 건물 틈새로 느닷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보는 순간, 그 모든 불편함이 사라졌습니다.
흰여울마을, 6·25 피란민 정착촌에서 관광명소로
흰여울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가파른 절벽 끝에 터를 잡으며 형성된 곳입니다. 1950년대 초반, 생존을 위해 다닥다닥 붙여 지은 판잣집들은 이제 카페와 공방, 갤러리로 탈바꿈했습니다. 이곳의 지형적 특징을 이해하려면 '급경사 연안취락(急傾斜 沿岸聚落)'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해안선을 따라 가파른 비탈에 형성된 주거 밀집 지역을 의미합니다(출처: 한국국토정보공사).
제가 직접 가보니 마을 골목 폭이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습니다. 이는 계획도시가 아닌 자연발생적 취락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건축학적으로 보면 '유기적 가로체계(有機的 街路體系)'라 불리는 구조인데, 쉽게 말해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든 길이라는 뜻입니다. 마을 주변으로는 절영해안산책로가 약 1km 구간에 걸쳐 조성되어 있으며, 해발 40~50m 높이에서 남항 바다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송강호 배우의 명대사 "니 변호사 맞재?"가 적힌 벽면이 주요 포토존입니다. 저도 그 벽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남항대교와 송도 해수욕장을 배경으로 뒷모습을 찍는 것이 정석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흰여울마당은 마을의 중심 거점으로,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가며 송도와 남항대교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고백의 역사'에서 주인공 공명과 신은수가 풋풋한 설렘을 안고 걸었던 곳도 바로 이 산책로입니다. 집에 와서 해당 장면을 다시 찾아보니, 제가 걸었던 그 길이 화면에 그대로 나와 더 감정이입이 잘 되었습니다.
주변 관광지로는 영도 남쪽 끝의 태종대가 있습니다. 태종대는 중생대 백악기 지층으로 이루어진 해안절벽 지대로, 태종대의 웅장한 해안 절벽은 파도가 오랜 세월 깎아 만든 '해식애' 지형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해식애란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깎여 만들어진 가파른 절벽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그 가파른 층이 자연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태종대의 바다가 웅장하고 거친 자연미를 보여준다면, 흰여울마을은 아기자기한 마을의 온기와 서정적인 바다 풍경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저는 태종대를 먼저 방문한 후 흰여울마을을 찾아서 그런지 더 잔잔하게 느껴졌습니다.
인근 송도 해수욕장에는 송도 해상 케이블카가 운영 중입니다. 바닥이 투명 유리로 된 캐빈을 타고 이동하면 발 아래로 바다가 펼쳐지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 지역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집단으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이 일대가 중생대 백악기 지층임을 입증합니다(출처: 문화재청).
절영해안산책로와 해안터널, 인생샷 명소의 현실
절영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새로 느닷없이 푸른 바다가 나타납니다. 마치 액자 속에 바다를 담아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걸었는데,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산책로 끝에 위치한 해안터널은 흰여울마을 최고의 포토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터널 안쪽에서 바깥 바다를 향해 역광으로 찍으면, 터널 입구가 액자 프레임처럼 작용해 실루엣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여유롭게 찍기 어려웠습니다.
저도 혼자 사진을 찍고 남편과 함께 찍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마음에 드는 사진이 별로 없어 아쉬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해안터널은 역광이 심한 곳이라 일반적인 구도보다는 실루엣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남편이 찍어준 사진보다 뒤에 기다리던 젊은 분께 부탁해서 찍은 사진이 훨씬 잘 나왔습니다. 역시 MZ세대의 감각을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주차 문제는 이곳의 가장 큰 난관입니다. 흰여울마을은 6·25 전쟁 당시 형성된 비계획 취락이다 보니 입지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공영주차장은 없고 사설주차장만 있는데, 주차 요금이 상당히 비쌉니다. 한 카페당 주차 공간이 4~6대 정도에 불과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돌릴 여유 공간도 없습니다. 저희도 한 바퀴 돌아서 겨우 자리를 찾았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영도에는 지하철역이 없어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부산역이나 남포동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10~15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차로 방문하면 주차 스트레스에 시작부터 진이 빠지고, 산책 후 다시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하는 수고도 만만치 않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공방과 카페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항 바다를 바라보며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곳,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배가 출출하다면 바다가 반찬인 라면을 먹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도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흰여울마을을 해 질 녘에 방문하면 송도 쪽으로 넘어가는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는데,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올해는 꼭 태종대 방문 후 노을을 보러 흰여울을 다시 찾을 계획입니다.
방문 시기로는 작년 가을이 최적이었습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지금은 봄이 성큼 다가온 만큼, 이번 주나 다음 주에 방문한다면 쾌적하게 구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발은 반드시 편안한 운동화를 착용하시길 권합니다. 경사진 길과 좁은 골목을 걸어야 하므로 구두나 샌들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흰여울마을을 다녀오며 느낀 점은, 전쟁의 상처 위에 피어난 삶의 흔적이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이 떠올랐습니다.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차량으로 북항대교를 건널 때만 보았던 곳을 직접 걸어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태종대, 흰여울마을, 영도 맛집 탐방을 거쳐 해수탕에서 피로를 풀고 돌아올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