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불교 신자가 아니면서도 사찰을 자주 찾아갑니다. 부산 금정산 자락에 자리한 범어사는 제 집에서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천년 고찰입니다. 절에 가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서,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이곳을 찾곤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가을, 1박2일 템플스테이에 직접 참여하면서 범어사의 깊이를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체험한 범어사 템플스테이의 생생한 과정과, 이곳이 품고 있는 문화재의 가치를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범어사 템플스테이, 1박2일 체험의 모든 것
범어사 템플스테이는 휴유정사라는 별도 공간에서 운영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의 60% 이상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체험 당일 대만에서 온 가족을 만났는데, 그들은 범어사가 마블 영화 '토르'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2023년 크리스 헴스워스가 대웅전 앞 마당에서 108배를 하는 장면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공개되면서 해외 관광객이 급증했다고 합니다(출처: 부산광역시 문화관광).
저는 주말 체험형 프로그램에 신청했습니다. 프로그램 구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선명상과 예불: 새벽 4시 30분 기상 후 참여
- 108배 서원주 만들기: 한 번 절할 때마다 염주알 하나씩 꿰기
- 스님과의 차담: 개인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시간
- 사찰 안내 및 공양: 담백한 비빔밥과 사찰 음식 체험
솔직히 선명상 시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명상(Meditation)이란 마음의 잡념을 비우고 내면에 집중하는 수행법인데, 생각보다 잡생각을 비우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5분만 앉아 있어도 "오늘 저녁 뭐 먹지", "내일 회사 일정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스님께서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 생각을 붙들지 말고 흘려보내세요"라고 조언하셨습니다.
반면 차담 시간은 정말 의미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직장 내 인간관계로 고민이 많았는데, 스님께서는 "상대의 행동에서 내 감정을 분리해 보세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것이지, 당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마디가 제 마음속 응어리를 상당 부분 풀어줬습니다.
108배 서원주 만들기는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지만, 지금도 제 책상 옆에 걸려 있는 염주를 볼 때마다 그날의 다짐이 떠오릅니다. 한 번 절하고 염주알 하나를 꿰는 과정을 108번 반복하니 새벽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단풍이 절정인 10월 말에 다시 신청하고 싶습니다.
범어사 문화재, 천년을 품은 건축의 보고
범어사는 서기 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1,350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여기서 의상대사란 신라시대 화엄종의 대표적 승려로, 당나라에서 화엄 사상을 배워 한국에 전파한 인물입니다. 범어사(梵魚寺)라는 이름도 독특한 유래를 갖고 있습니다. 금정산 정상에 있는 우물에 하늘에서 금색 물고기가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에서 '하늘 범(梵)', '고기 어(魚)'를 따온 것입니다.
범어사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역사가 오래되어서가 아닙니다. 이곳은 건물 자체가 문화재의 집합체입니다. 조사전(祖師殿)이란 역대 고승의 영정을 모신 전각인데, 범어사 조사전에는 3·1운동 33인 중 한 명인 용성 큰스님의 동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성철 큰스님의 법맥이 이곳에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출처: 문화재청).
범어사의 주요 문화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대웅전(보물 제434호):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법당으로, 내부 닫집의 조각이 정교합니다.
- 삼층석탑(보물 제250호):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며, 기단부의 안상 조각이 섬세합니다.
- 일주문(보물 제1461호): 일반적인 일주문은 기둥이 2개인데, 범어사 일주문은 4개 기둥이 일직선으로 서 있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축물은 일주문이었습니다. 일주문(一柱門)이란 한 줄로 서 있는 기둥으로 세운 사찰의 첫 번째 문을 의미하는데, 범어사 일주문은 4개 기둥이 모두 같은 선상에 있어 정면에서 보면 기둥 하나만 보입니다. 해외 유명 건축가도 이 구조를 보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공학적으로도 우수한 설계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범어사 경내에는 우물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범어사의 지형이 배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배 모양의 땅에 우물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속설이 있어, 옛 선조들이 의도적으로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범어사는 건축뿐 아니라 풍수와 상징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저는 둘째 날 새벽 경내를 산책하다가 500년 된 은행나무를 만났습니다. 범어삼기팔경(梵魚三奇八景)이란 범어사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신기한 것과 여덟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어산노송(於山老松)'은 오래된 소나무를, '은행나무 단풍'은 가을철 절경을 가리킵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10월 중순이었는데, 비가 살짝 내려서 안개가 금정산 자락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범어사 전체가 마치 수묵화 속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범어사는 단순히 기도하러 가는 사찰이 아니라, 한국 건축사와 불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부산이 해양 도시로만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천년 고찰이 도심에서 1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다음번 부산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하루는 꼭 사찰 투어로 범어사를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제 경험상 가을 단풍철이나, 새벽 안개가 자욱한 날 방문하면 더욱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