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오르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과연 출발이라도 했을까요? 경주 남산 칠불암으로 향하는 길에서 저는 수없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해발 400m 벼랑 위에 자리한 칠불암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신성한 기도처로 여겨진 곳입니다. 일곱 분의 부처님께 일곱 가지 소원을 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그곳에서, 저는 단순한 등산 이상의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칠불암까지 한 시간, 이 고된 등산이 주는 의미
정말 한 시간이면 충분할까요? 솔직히 저는 그 시간이 훨씬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칠불암은 경주 남산 입구에서 출발해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암자입니다. 여기서 암자란 큰 절에서 떨어져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작은 수행처를 의미합니다(출처: 문화재청).
등산로 초입에는 이미 다녀간 사람들이 놓고 간 배낭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뒤늦게 오르는 이들을 위해 짐을 대신 날라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었죠. 제가 직접 걸어보니 이런 배려가 왜 필요한지 금방 이해가 됐습니다. 깔딱고개라 불리는 구간을 지나면서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몇 번이고 멈춰 서야 했으니까요.
산을 오르며 마주친 사람들은 저마다 간절한 소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 사업 번창과 가족 건강을 바라는 40대 부부
- 쌍둥이 동생 중 한 명의 결혼을 기원하는 언니
- 아들의 검도 대회 우승을 소원하는 어머니
제 경우에는 큰아들의 취업이 절실했습니다. 몇 개월째 구직 활동을 하는 아들을 보며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 고된 등산조차 하나의 수행처럼 느껴졌습니다. 소원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국보 제312호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8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 기술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 3구와 사방불 4구를 합쳐 총 7구의 부처님이 계시기에 '칠불암'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여기서 마애불이란 자연 암벽에 직접 조각한 불상을 뜻하는데, 별도의 건축물 없이 자연과 하나 된 모습이 특징입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절밥 한 그릇에 담긴 산사의 온기
등산 후 절에서 먹는 밥이 이렇게 맛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칠불암에 도착했을 때 스님들이 준비해주신 공양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귀했습니다. 산속이라 가스 시설도 없어 부탄가스로 조리하는데, 식재료 역시 모두 산 아래에서 지고 올라온 것들이었죠.
제가 특히 놀란 건 부산에서 오신 희공스님이 가져오신 미역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미역을 가지고 왔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스님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산 속 바다가 따로 없더군요. 물 한 방울도 귀한 곳에서 이렇게 정성스런 음식을 대접받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절에서 제공하는 공양은 일반 음식점의 식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서 공양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음식을 만든 이의 정성과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며 먹는 수행의 일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같은 밥과 반찬이라도 절에서 먹으면 왠지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들고, 몸에 이로운 음식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저는 두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습니다. 운동을 많이 해서 배가 고팠던 것도 있지만, 정말 맛있어서 숟가락이 멈춰지지 않았거든요. 함께 온 일행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들 "절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했으니까요.
더 놀라운 건 이곳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에는 신학대학교 학생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스님, 우리는 신학대 학생들입니다"라며 인사하는 청년들에게 예진 스님은 "많이 드세요"라며 웃으며 공양을 권했다죠. 절에 오면 종교를 떠나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스님의 말씀이 실감났습니다.
칠불암에는 스위스에서 오신 휴정 스님도 계셨습니다. 유럽에서 한국 선불교 책을 읽고 출가를 결심해 13년째 이곳에서 수행 중이시라고 합니다. 출가라는 게 한국에 살아도 쉽지 않은 결정인데, 외국에서 오셔서 이런 결심을 하신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물 길어 오는 일부터 식사 준비까지 모든 게 힘든 산속 생활을 13년이나 이어오신 그 정성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예진 스님은 마지막 법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밥 먹는 것도 중요하고 약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잘 먹어야 할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순간순간 먹습니다. 그 순간순간 먹는 마음을 잘 먹고 산다면 한 해가 밝은 새해가 될 것입니다." 정말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 정신도 몸도 다 아프니까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웃으며 살다 보면 우리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는 걸, 칠불암에서 배웠습니다.
칠불암에서의 하루는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습니다. 새벽 예불부터 산행, 공양, 그리고 스님들과의 대화까지 모든 순간이 수행이자 배움이었습니다. 다음에는 꼭 하룻밤 머물며 산사의 고요함 속에서 제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소원이 간절할 때, 마음의 정리가 필요할 때, 경주 남산 칠불암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힘든 등산길이지만, 그 끝에서 만나는 평화와 감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니까요.